단독주택에 살고 싶다. / 211227 Day 27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 모든 걸 갖춘 단독주택이면 좋겠지만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넓은 마당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때 잔디밭은 없어도 작은 마당이 있는 곳에서 자랐다. 그곳에는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있었고 작은 바위들로 이뤄진 화단이 있었다. 한 견에 수돗가가 있어서 여름에는 물장난을 누나와 하곤 했다. 그 기억이 좋았는지 예전부터 결혼하면 꼭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었다. 마당에는 나무를 키우며 새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 봄에 피는 꽃을 눈으로 즐기고 여름에 푸르른 나뭇잎이 울창한 나무를 보고 싶다. 가을에는 낙엽이 가득한 나무를 보며 스산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 겨울에는 가지만 남은 나무가 쓸쓸할 수 있으니 옆에 침엽수도 심어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꾸며보고 싶다. 마당 한 구석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다육이도 키우고 아이와 함께 고구마, 감자 그리고 상추를 키우는 작은 텃밭도 가꾸고 싶다. 여름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미니 풀장을 만들어주고 싶다. 코스트코에서 눈여겨 보고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바베큐 장비도 갖추어서 지인들을 초대하고 싶다. 담벼락에는 작은 조명을 설치하고 싶고 마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커갈 강아지도 키우고 싶다. 잔디 깎느라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상을 즐기고 싶다. 

 혼자 살 생각을 아니기 때문에 아내와 의논을 해야한다. 아내는 절반의 찬성이다. 아내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분명히 재미있고 즐겁겠지만 손이 많이 가고 유지하기 부담스럽다고 한다. 충분히 공감가는 맞는 말이다. 아파트 관리비는 공동주택인 만큼 가성비가 좋다. 한 달에 약 15-20만원을 내고 있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하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편하고 경비원 분들과 미화원 분들이 단지를 신경써서 관리해주시고 있다. 덕분에 늘 편하고 깨끗한 공간을 누릴 수 있다. 단독주택으로 가면 내가 경비원이자 미화원이자 조경 관리사, 주차요원, 간단한 수리공의 일을 해야하고 벌레 퇴치까지 해야한다. 그리고 이 일들을 할 간단한 장비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넣어둘 작은 창고도 둬야한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는 건 분명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외국과 다르게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대부분의 가장들에게는 짐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고 거기에 만족하는 건 그만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가 아닐까? 매일 저녁을 가족들과 함께 하는 삶이라면 영어 동요를 흥얼거리며 집 관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말 마다 교외로 놀러가는 것도 평일에 아파트에 눌려있던 게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가는 게 아닐까. 내년에 나는 취직을 할 때 저녁이 있는 삶을 우선 순위에 두려고 한다. 당장 월급이 더 높은 것 보다는 한창 커가는 아이들과 살을 부대끼며 놀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다. 출퇴근 시간도 가능한 짧게 하고 싶다. 덜 피곤한 채로 퇴근해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글도 써보고 생산적인 걸 해보고 싶다. 

 한동안 단독주택에 대한 열망을 접어두었다가 최근에 주호민님의 고기리 설명회를 듣고 다시 불타올랐다. 오리건주에 1달간 홈스테이를 했던 집에서 트램펄린을 하고 뒷마당에서 마시멜로를 구워먹었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주차는 많이 어려울까? 애들 학원은 잘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같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주머니 사정만 좋으면 기생충에 나오는 집에 가고 싶다. 그게 어려우니 서울 주변이나 외곽에서 적당한 곳에 가서 살고 싶다. 학원도 엄마아빠 차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단독주택에 살며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도 남겨주고 싶다. 아내와도 식물을 키우고 텃밭을 가꾸는 취미를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식들이 독립해 나가면 손주들을 위해 풀장에 또 물을 받아놓으려고 한다. 가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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