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식은 연말 분위기에도 갓 삶은 족발은 따뜻하겠지 / 211216 Day 16

 벌써 2021년 12월의 절반이 지났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크리스마스이고 2022년 새해를 맞는다. 이번 연말은 폭증하는 코로나 환자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어느 때 보다 차분하다. 연말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나 가족들끼리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평소에 사람들을 만나는 건 많이 못한다. 아이를 키우고 레지던트를 하며 임신한 아내와 함께 살다 보니 사람들 만나러 나가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코로나가 직격탄으로 날라와 모든 모임이 취소되어 버렸다. 많이 아쉽다. 

 어릴 적에 우리 집은 외식은 많이 했어도 시켜먹는 건 잘 안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이 배달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갈비를 먹으러 고기집도 자주 가고 횟집도 많이 갔었다. 그 당시만 해도 배달음식으로는 00반점, 황룡00, 00문 등 중화요리가 대부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연말에는 꼭 족발을 시켜먹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집에서 먹어도 쫄깃하고 야들야들한 족발이라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어릴 적 연말 기억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걸 가지고 놀면서 12월31일에 족발을 먹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일 년에 마지막 날에는 꼭 보신각 타종 행사를 보고 잠에 들었다. 그때는 이제 한 살을 더 먹는 다는 설렘이 있는 나이였다. 외갓집 어른들께서 오시면 어른들은 화투를 치시고 애들은 신나게 밤 늦게까지 놀곤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맛있는 음식들, 티비에서 나오던 각종 시상식들 그리고 이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까지.

 확실히 30대에 들어서니까 무덤덤해진다. 대학생 때만 해도 학년이 올라가다 보니 확실한 변화를 느꼈던 것 같다. 일을 시작하면서는 연말에 바쁘다 보니 몇 해는 스리슬쩍 지나갔었다.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어서일까. 그리고 한 살 더 먹는 게 달갑지 않기도 하다. 밤을 새우고 나도 쌩쌩했던 대학생 때의 나는 어디가고 조금만 늦게 자도 낮에 멍한 내가 되었는지. 시간이 점점 빨리 흘러간다. 나와 달리 아들은 이제 곧 한 살 더 먹는 걸 듣더니 눈이 번쩍인다. 이제 사촌 형과 나이가 같아지는 지 물어본다. 이제 몇 밤만 자면 되는 지 계속 물어보고 이제 곧 5살이 된다고 하면 폴짝폴짝 뛰며 좋아라한다. 다섯살이면 스스로가 아기에서 형님이 된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내년에는 동생도 태어난다고 하니 아들은 내년이 기다려 지나 보다.

 코로나로 참 조용한 연말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은데 코로나 때문에 섣불리 연락하기 어렵고 만삭인 아내의 출산 걱정에 우리 부부는 산 속 깊은 절의 스님처럼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사는 중이다. 아들 덕분인지 그래도 연말 분위기를 조금 내고 싶다. 손주를 이뻐해주시는 양가 어른들을 따로 뵈어야겠다. 그리고 12월 31일에는 족발을 시켜야겠다. 아들아 많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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