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분위기 / 211209 Day 9
이제 한 달만 지나면 벌써 아들이 5살이된다. 이 녀석이 요즘 한창 땡깡을 피우고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여행을 갔을 때도 어찌나 땡깡을 피우던지. 통영여수 여행의 마지막 날 바다를 떠나기 싫다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땡깡을 부리는 게 된 만큼 감정표현도 다양해졌다. 4박 5일 여행을 하면서 케이블카를 타고 유람선을 타고 몽돌해수욕장을 갔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꺄르르 웃고 너무 재밌다고 펄쩍펄쩍 뛰는 게 너무나 귀여웠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아기가 어리고 나중에 기억도 못할텐데 꼭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야할까? 부모님이나 장모님께 맡기고 와이프랑만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제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잠시 아들이 어린이집에 갔을 때 와이프와 점심을 사먹으면 이거 00이가 좋아하는 데, 나중에 여기 한 번 데리고 오자 하는 식의 이야기가 끝이지 않는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 다고 잠깐 아들이 곁에 없으면 꽤나 어색하고 잘 먹고 있는지 잘 놀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 그러고는 하원 시키면 다시 으이그 이 땡깡쟁이 하게 되는 게 우습다.
여행에 아들을 늘 끼고 가고 싶은 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그 분위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정확히 어디를 갔었고 무엇을 봤는지는 사실 기억에 크게 남지는 않는다. 새벽에 고기 반찬으로 코다리 강정을 먹으며 관광버스를 타고 갔었던 대둔산의 단풍여행이 기억나고 산에서 텐트 치고 자다가 비가 많이 와서 급하게 비 맞으며 차로 갔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사륜구동 SUV를 자랑하던 아버지 친구에게 시냇물 건널 수 있냐고 했다가 차가 빠져서 경운기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도 슬쩍 지나간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갔던 여행은 거의 기억이 안 난다. 그치만 기억에 남는 건 아버지가 주도적으로 가족들을 주말마다 여기 저기 끌고 다녔기 때문에 나와 누나는 월요일 부터 어디를 갈 지 두근거렸던 것이다. 금요일 밤에는 어디를 놀러갈 지 부모님께 계속 물어보고 신났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 차 뒷자리에 누나와 타고 엄마아빠와 여행을 가던 그 분위기와 설렘이 기억에 남는다. 휴게소에서 맛있는 간식을 사먹고 같이 뜨거운 태양 아래 걷기도 하고 소나기를 맞기도 했다. 부모님은 자연과 절을 좋아하셔서 대부분 야외로 놀러다녔다. 산과 절에 있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엄마가 이런 저런 나무와 꽃을 설명해 주던 걸 들으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지도를 열심히 보다가 결국에는 주유소에서 길을 물어보는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와 아웅다웅 투닥 거렸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집에 돌아 오는 길에는 늘 크레도스 뒷자리에서 곯아떨어졌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면 언제나 집 근처였고 엄마 손을 꼭 잡거나 안겨서 집에 들어가서 얼른 씻고 잠에 들었다.
아들에게도 이런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여행에서 본 것도 기억하면 좋겠고 좋은 밥을 먹인 것들도 기억하면 좋겠지만 역시 무리다. 엄마아빠와 함께 했고 즐겁게 보고 듣고 걷고 먹고 놀았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바다의 냄새, 몽돌해수욕장의 소리, 케이블카의 떨림 등을 엄마아빠와 함께 했고 그게 즐거웠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나중에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힘이 들거나 어릴 적 생각을 했을 때 따뜻한 기억을 가슴에서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 건강관리 잘 해서 아들과 오래도록 열심히 뜨겁게 놀고 지지고 볶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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