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는 공부가 왜 안 될까 / 211217 Day 17

 공부를 할 때는 카페나 독서실을 이용하는 편이다. 카페를 가면 머리를 깨워주는 커피를 마시며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 깨끗한 화장실도 있고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다. 카페 음악을 들으며 분위기를 즐길 수 있고 허기를 달래 줄 간식도 먹을 수 있다. 독서실도 집중하기 좋은 장소에 이어폰으로 원하는 음악을 들으며 공부를 할 수 있다. 놀라운 점들은 사실 위에서 말한 모든 걸 집에서도 할 수가 있다. 원목 테이블, 블루투스 스피커, 각종 간식들이 있고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편안 내 집의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와이프가 강력히 주장해서 해외직구한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있어서 커피도 웬만한 카페보다 맛이 좋다. 그런데 왜 카페나 독서실을 가야만 공부가 더 잘 될까?   

 집에서는 우선 시선 닿는 곳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보인다. 거실에는 어질러진 책들과 장난감들이 있고 다용도실에는 세탁을 기다리는 빨래들과 빨리 버려달라는 종량재 봉투가 날 기다린다. 바닥에 지저분한 게 보이면 바로 청소기를 돌려야할 것 같고 화장실에 가면 샤워를 하다가 봤던 물때가 생각난다. 왠지 가습기 청소도 해야할 것 같고 공기청정기 필터도 한 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햇볕 좋은 날엔 먼지 털고 이불 빨래를 해야할 것 같고 비 오는 날에는 미세먼지도 적으니 환기도 한 번 시켜야 할 것 같다. 눈길 닿는 곳마다 해야 할 일이 떠오르고 공부를 하다보면 잠깐 하는 집안 일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대학교 시험시간에도 뉴스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내 집중력을 흐뜨리는 게 너무 많다.
 
 옆에 아무도 없는 것도 문제다. 독서실이나 카페를 가면 열심히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을 보며 나도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이 든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나는 예전부터 그런 분위기에 잘 동조되는 편이었다. 재수를 할 때 독서실에서 독학을 했으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재수 종합반의 타이트한 학사관리를 받는 게 체질적으로 잘 맞았다. 집에서 공부를 하면 아무도 없으니 잠깐 딴 짓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잠깐 쉬어도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결정적으로 3초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침대가 있으니 조금만 피곤해지면 벌렁 누워버리고 싶다. 열심히 쉬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자기합리화 식의 사고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웹툰이나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분들을 보면 작업실이 보통 있다. 처음엔 제조업도 아니고 큰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집에서 안 하고 왜 작업실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좋은 태블릿이나 컴퓨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내가 쉬는 곳과 일하는 곳을 분리하는 게 공부든 일이든 효율에 큰 영향을 주는 걸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 분들도 작업실로 가면 작가가 되는 것이고 집으로 가면 온전한 내가 되는 것이다.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이 주로 작업한 카페가 관광 명소가 되었다. 조앤 롤링도 집에서는 해리 포터를 쓰다가 벌렁 누워서 쉬었을까? 아무래도 카페에서 해리포터가 더 잘 써니지 카페에서 주로 작업한 게 아닐까? 

역시 공간과 분위기에 사람은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지금도 집에서 공부하려다가 글쓰기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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