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 211207 Day 7
요즘 출근을 안 하다보니 수염을 다시 기르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닐 수 있으니 덜 부담스러워서 예전보단 눈칫밥을 덜 먹는다. 수염을 기르는 것의 장점은 우선 면도를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매일 아침 화장을 하는 것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면도도 번거로운 면이 있다.
우선 면도기에는 크게 칼 면도기와 전기면도기가 있다. 칼 면도를 하려면 따뜻한 물에 세수를 하면서 입술 주변을 충분히 적셔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이발소에서 해주는 것 처럼 뜨뜻한 수건을 덮어주면 더 좋겠다. 면도 거품을 입과 볼에 두른 뒤 부드럽게 면도를 시작한다. 너무 빨라도 안 되고 너무 힘이 강해도 안 된다. 마치 풍선에 면도거품을 바른 것 처럼 천천히 집중해서 면도를 해야한다. 수염의 결을 따라 면도를 하고 마지막에 반대방향으로 깨끗히 밀어주면 촉촉하고 수염이 없는 상태가 된다. 신생아 발바닥처럼 보드랗다. 이렇게 좋은 칼 면도이지만 내가 미숙해서인지 아무리 신경을 써도 피부가 붉어지거나 가느다란 상처가 나서 핏기가 맺히는 경우가 있다. 찬물로 세수를 해서 피부를 탱탱하게 하고 지혈을 시켜준다. 쿨향 나는 애프터쉐이팅 로션까지 해줘도 쓰라림과 보이지 않는 피부손상을 모두 피할수는 없다.
전기면도기는 칼 면도기에 비하면 정말 편하다. 징징하고 석석하다 쿵쿵하면 끝이다. 징징은 시끄러운 전기 면도기의 시작 소리다. 전기면도기를 수염으로 가져가면 석석 소리를 내며 수염이 잘려나간다. 한 번에 깨끗해지지는 않아도 몇 번 해주면 칼 면도 보다 훨씬 빨리 면도가 끝난다. 마지막으로 전기 면도기에 모인 수염을 털기 위해 세면대에 쿵쿵해주면 깔끔하게 끝이다. 정말 편리하지만 전기면도기로는 아무리 잘 해도 칼 면도를 따라 갈 수는 없다. 기분 좋게 면도를 마치고 잘 만져보면 거칠거칠한 수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칼 면도를 하고서는 아들한테 얼굴을 부빌 수 있지만 전기 면도를 하면 아들이 분명 싫어할 거다.
장황하게 써봤지만 사실 길어도 5분이면 끝날 일이다. 매일 면도를 안 해서 아낀 5분으로 큰 일을 이룰 수 있을까? 수염을 기른 만큼 주변의 시선과 왜 기르냐고 물었을 때 답하는 데 그만큼 시간을 보낸다. 만약에 내 수염이 이방이나 파뿌리 같이 나면 아예 수염을 기를 생각도 안 했을 것 같다. 그건 내 기준으로는 정말 지저준해 보인다. 다행히 내 수염은 링컨처럼 머리부터 턱까지 이어지는 스타일이다. 머리부터 쓸어내리면 턱까지 이어지는 결을 느낄 수 있다. 볼까지 수염이 가득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써도 잘 보이는 편이다. 오늘 오랜만에 뵌 부모님께서는 또 산적처럼 수염을 길러놨냐고 한 소리를 하신다. 또 얼마 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다 아줌마들만 있는 곳에 수염 있는 아저씨가 와서 그런지 다른 집 아이들 눈이 동그래졌다. 어릴 적 나였으면 정말 시선이 집중되는 게 싫어서 꼬박꼬박 면도를 했을텐데, 나이가 들면서 성격도 조금씩 바뀌나 보다.
특별한 이유를 갖지 않고 수염을 기르는 사람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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